"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판단하라(in dubio pro reo)"는 형사소송법의 중요한 원칙입니다. 이 원칙은 다소 낯설지만, "100명의 범죄자가 도망가도 1명의 무고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아야 한다"는 말로 표현되곤 합니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형사 사건에서는 검사가 피고인의 유죄를 주장하고 입증하는 책임을 지게 됩니다.
하지만 성범죄 사건에서는 상황이 조금 다릅니다. 단순한 성폭행이나 성추행 경우에는 상황이 비교적 명확합니다. 문제는 두 사람 간의 '관계'가 개입된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남성은 '서로 동의 하에' 성관계를 가졌다고 생각하는 반면, 여성은 '자신의 의지에 반하여' 성관계를 가졌다고 주장할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는 대부분 시간이 지난 후에 고소나 고발이 이뤄지며, 증거가 남아있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모텔의 CCTV나 자동차의 블랙박스를 확인하려 해도 자료는 이미 삭제되었거나 사라진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성관계가 동의 하에 이루어졌는지, 아니면 준강간인지를 증명할 증거가 부족한 상황입니다.
증거가 불충분한 일반 형사사건에서는 피의자가 유리한 입장에 설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원칙에 따라, 의심스러운 경우에는 피고인에게 이점을 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범죄 사건에서는 이와 다르게 처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사건에서는 오히려 가해자가 불리하게 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하며, 대부분 피해자의 진술로 사건이 결정되고, 그 진술이 일관성이 없더라도 증거로 인정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제 이러한 사례들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피해자 진술을 증거로
울산지법은 2008년 봄부터 고종사촌 여동생을 지속적으로 성추행한 A씨에게 1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하였습니다. 재판부는 다음과 같이 의견을 표명하였습니다.
“수사 단계에서 법정에 이르기까지 피해자는 일관되고 명확하게 범죄 사실을 부합하는 진술을 해왔다.”
시간이 많이 경과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되었기 때문에 실형이 선고되었습니다. 이처럼 사건 발생 후 시간이 얼마나 흘렀든, 피의자에 대한 명확한 물리적 증거가 부족하더라도,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이 있다면 피의자는 불리한 입장에 놓이게 됩니다.
피해자 진술을 배척해서는 안된다
한 70대 남성이 자신의 여비서를 강제로 추행한 혐의로 기소되어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2심에서는 무죄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대법원에 의해 다시 하급심으로 돌려보내졌습니다. 대법원은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할 때 다음과 같은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습니다.
"인간의 기억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희미해질 수 있으며, 강한 추궁을 받게 될 경우 자신의 기억이 정확한지 의심하게 되어 모호한 진술을 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이유로, 표현의 차이에서 오는 일관성 없음이나 진술의 변화가 있더라도 그 진술의 신빙성을 함부로 배제해서는 안 된다."
이 지적은 가해자의 진술이 약간의 불일치를 보일 경우 신빙성이 의심받는 것과 대조적으로, 피해자의 진술이 다소 불명확해졌다 하더라도 그 신빙성을 쉽게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중요한 지침을 제시합니다. 이는 사법 과정에서 피해자 진술에 대한 세심한 접근과 공정한 평가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 사례들로부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성범죄 사건에서 피의자가 처음부터 불리한 위치에 놓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적이건 아니건, 피의자에 대한 사회적, 법적 인식은 종종 엄격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을 단순히 현실을 비난하며 '나는 억울하다'고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 처한 경우, 일관된 진술을 확보하고, 합의에 의한 성관계였음을 명확히 입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혼자서 이루기 어려운 일입니다. 인간의 기억은 본래 불완전하며, 수사 과정 중에 쉽게 흔들릴 수 있습니다. 형사 사건에 전문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변호사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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